하늘의 폭력, 최악의 인종차별 항공사는?

유나이티드 항공에서 승객이 질질 끌려 나오다 피투성이가 됐던 사건 기억하시나요? 지난 4월, 항공사 직원이 타야 해 자리가 모자란다며 베트남계 승객 데이비드 다오(69)를 폭력적으로 퇴거시켜 충격을 던졌죠. 저 머나먼 미국 땅에서 벌어진 일이 한국에서도 일파만파 퍼진 이유는 피해자가 우리와 같은 아시아인이었던 영향이 컸을 겁니다.

항공기에서 강제 퇴거된 승객들.

항공기에서 강제 퇴거된 승객들.

유색인종들을 차별하는 문화가 있는 외항사는 어디일까요. [고보면 모있는 기한 계뉴스]에서는 미국 국적기에서 최근 1년 내 벌어진 인종 차별을 다뤄봅니다. 굳이 돈을 주고 차별을 살 필요는 없으니까요.

알고보면 쓸모있는 신기한 세계뉴스
미국 대형 항공사의 인종차별 논란

 

아메리카 항공 이용 주의보 발령
2017년 9월 1일 미국 텍사스주 상공에서 달을 지나는 아메리칸 에어라인 항공기. (AP Photo/Tony Gutierrez)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2017년 9월 1일 미국 텍사스주 상공에서 달을 지나는 아메리칸 에어라인 항공기. (AP Photo/Tony Gutierrez)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미국에서 가장 오래되고 큰 시민 권리 기구 유색인 지위 향상협회(NAACP·The National Association for the Advancement of Colored People)는 최근 아메리카 항공 이용 주의보를 내렸습니다. 아메리카 항공이 아프리카계 미국인에 대한 차별적 행위를 해 온 사례가 누적됐다면서죠.

NACCP는 ‘인종에 무감각하고 편견이 있음직한 기업 문화’ 탓에 흑인 이용자들이 ‘무례하고, 차별적이며, 위험한 상태’에 시달릴 수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NAACP가 거론한 사례는 네 건입니다. NAACP의 활동가인 아프리카계 미국인 여성 태미카 몰로리는 동의 없이 좌석이 변경된 데 항의하다 기장에게 퇴거 명령을 받았고, 한 흑인 남성은 백인 승객들의 무례하고 차별적인 발언에 응수했다가 승무원의 요구로 좌석을 포기해야 했습니다. 일등석 항공권을 예약한 한 흑인 여성은 일반석으로 자리를 옮겨야 했던 반면, 같이 예약한 백인 동료는 일등석에 남아있었다고 합니다.

아메리칸 항공의 기장 명령으로 퇴거당한 경험을 증언하는 NAACP의 활동가 태미카 몰로리. (AP Photo/Bebeto Matthews, File)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아메리칸 항공의 기장 명령으로 퇴거당한 경험을 증언하는 NAACP의 활동가 태미카 몰로리. (AP Photo/Bebeto Matthews, File)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이에 대해 아메리카 항공은 내부 팀원들에게 전하는 성명서를 통해 “우리는 다양한 배경을 가진 구성원들이 함께 한다”면서 “모든 장벽을 제거하고 인종 차별을 없애자는 NAACP의 미션은 우리가 매일같이 보증하는 미션이기도 하다”며 유감을 표명했죠. 또 NAACP와 대화를 하겠다고 나섰습니다.
 

끌려나간 무슬림 임신부
사우스웨스트 항공[AP=연합뉴스]

사우스웨스트 항공[AP=연합뉴스]

미국 주간지 더 네이션은 비행기에선 유색인종 여성들이 특히 불리하다고 분석했습니다. 지난 9월 파키스탄계 미국인이자 무슬림 여성인 아닐라 돌라차이는 늘 이용하던 사우스웨스트 항공을 탔다가 악몽같은 일을 겪었습니다. 알레르기를 이유로 다른 승객이 태운 강아지와 떨어진 자리로 바꿔달라고 요청했다가 아예 비행기에서 내려야 했거든요.

항공사 측은 처음엔 돌라차이의 요구에 응하겠다고 하더니, 이내 알레르기로 목숨이 위험할 수 있으니 비행기에서 내리라고 요구했습니다. 돌라차이는 자신의 알레르기는 생명이 위험한 종류가 아니라며 거부했어요.

하지만 사우스웨스트 항공은 메릴랜드 공항 경찰을 불러 그녀를 우격다짐으로 끌어냈습니다. 그 과정에서 바지가 벗겨지기도 했습니다. 악몽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습니다.

공항 경찰들이 “손대지 말라”고 절규하는 돌라차이를 뒤에서 껴안아 끌어내는 영상.

메릴랜드 공항 경찰은 그녀를 무질서, 정당한 법집행에 대한 불복종, 치안 방해, 경찰 방해, 체포 저항 등의 혐의로 체포했거든요. 무슬림매터스(MM)에 따르면 돌라차이는 브라운 대학 교수로, 심지어 임신중이었습니다.

사회적 지위도 피부색 앞에선 무용지물
델타 항공[EPA=연합뉴스]

델타 항공[EPA=연합뉴스]

지난해 12월엔 델타 항공에서 흑인 여성이 동물처럼 팔이 잡힌 채 질질 끌려나가 논란이 됐습니다. 이 여성은 미시간 대학교 조교수였습니다.

누운 자세로 질질 끌려 나가는 흑인 여교수의 퇴거 영상.

유나이티드 항공에서 강제 퇴거당했던 데이비드 다오는 의사였습니다.하지만 이들의 직업이나 사회적 지위, 임신 여부도 피부색 앞에서는 무용지물이었죠. 해외 언론들은 돌라차이 교수의 경우엔 무슬림에 대한 차별에다 미소지니(misogyny·여성에 대한 혐오나 멸시)까지 겹쳤다고 해석합니다.

결과적으론 미국 대형 항공사 치고 근래에 인종차별 관련한 사건이 없었던 곳을 찾는 게 더 어려울 지도 모르겠습니다.

미국 백인 55% “역차별 있다고 생각”

그런데도 미국 백인 55%가 백인에 대한 역차별이 존재한다고 믿고 있답니다. 미국 공영 라디오 NPR이 10월 24일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그렇습니다. NPR은 이들의 생각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해 대선 당시 주장했던 논리와 맞닿는다고 분석합니다.

막상 실제로 차별을 당했다는 백인은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구직 과정(19%), 동일 임금(13%), 대학 입학(11%) 과정에서 차별을 당했다는 응답은 각각 많아야 20% 미만이었죠.

NPR의 조사 자료에 따르면 실제로 차별을 겪은 흑인의 비율은 50%가 넘었습니다. 경찰과 접촉할 때(50%), 직업을 구할 때(56%) 차별을 경험하는 건 물론 동일 임금을 받지 못하는(57%) 경우도 많았습니다. 미국에서 흑인에 대한 차별이 존재한다고 믿는 비율은 92%에 달했습니다.

적어도 항공기에서의 사건이나 데이터 상으론 역차별을 이야기하기엔 아직 일러 보이죠?

갈색 시리얼과 인종차별?
캘로그사의 시리얼 포장지가 인종차별 논란에 휩싸였습니다. 마블 코믹스의 수퍼 히어로 ‘블랙 볼트’의 작가인 살라딘 아메드가 24일(현지시간) 올린 트위터가 시작이었죠. 그는 아들이랑 아침을 먹다가 포장지를 보고 화들짝 놀랐답니다.

캘로그 시리얼 포장지 그림에 숨어 있는 인종차별을 비판한 트위터. [사진=사라딘 아메드 트위터 캡처]

캘로그 시리얼 포장지 그림에 숨어 있는 인종차별을 비판한 트위터. [사진=사라딘 아메드 트위터 캡처]

노란 옥수수알들이 놀고 즐기는 가운데 갈색 옥수수알만 잡역부로 묘사돼 있었거든요. 아메드는 “어린이들에게 인종차별을 가르치고 있다”고 비판했어요.

캘로그사는 다양성을 표현하려던 것일 뿐, 불쾌하게 할 의도는 없었다면서 즉각 사과했습니다. 또 빨리 포장지를 새로 디자인 해서 내놓겠다고 약속했습니다.

 

‘프리덤 서머’ 50주년, 끝나지 않은 인종 문제

올해 2014년은 프리덤 서머 50주년이다. 미국 PBS에서는 다큐멘터리 시리즈 ‘미국의 경험’(American Experience) 프리덤 서머 편을 6월 24일에 방영했다. 25일에는 미국 남부 미시시피 주 잭슨 시 컨벤션센터에 “우리 승리하리라” 노래가 울려 퍼졌다. 반세기 전 그 뜨거운 여름, 백인과 흑인들이 손을 맞잡고 인종차별 철폐를 불렀던 곳이다.

그것도 잠시 최근에 경찰이 10대 흑인을 총으로 쏴 사망하는 사건이 일어났고, 이를 계기로 흑인 시위가 미국 전역으로 확대되고 있다. 급기야 미주리 주 퍼거슨 시는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100년 전 W. E. B. 듀보이스가 “20세기는 인종차별이 가장 큰 문제가 될 것이다”라고 내다보았듯이, 여전히 인종 문제를 제쳐두고 미국의 민주주의는 한 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한다. 민권운동 하면 어디서나 로마틴 루터 킹과 로자 파크스라는 이름이 나오고 주류 언론도 그들 이름만 되풀이된다.

이 책에 나오는 수백 명의 이름을 모두 기억할 수는 없더라도, 이제 우리는 패니 루 헤이머와 밥 모지스, 그리고 굿먼, 체이니, 슈워너 세 청년의 이름을 부를 수 있다.

1960년대 미국 민주주의와 인종분리

1963년 8월 28일, 워싱턴 DC 한가운데 20만 명이 넘는 군중 앞에서 마틴 루터 킹은 그 유명한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라는 연설을 했다.

킹 목사가 “지난날 노예였던 이들의 아들들과 지난날 노예소유주였던 이들의 아들들이 형제애의 식탁에 함께 둘러앉을 그날”을 꿈꾸고 있다고 말할 때, 백인의 71퍼센트는 “흑인은 냄새가 다르다”고 말했다. 언젠가 아이들이 “피부색이 아니라 인격으로 평가 받게” 되리라는 킹의 희망에 군중들이 환호할 때, 여론조사 참가자의 절반은 “흑인은 날 때부터 지능이 떨어진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킹이 점점 감정이 고조되어 “흑인과 백인, 유대인과 비유대인, 개신교와 구교를 떠나 하나님의 모든 자녀들이 손에 손을 잡을 수 있는” 날을 꿈꾸고 있다고 말할 때, 여론조사 참가자의 69퍼센트는 “흑인들은 도덕관념이 느슨하다”고 답했고, 네 명 가운데 세 명이 “흑인은 꿈이 별로 없다”고 답변했으며, 90퍼센트는 딸이 흑인과 사귀는 걸 절대로 허락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특히 남부에서는 73퍼센트가 흑인의 지능이 떨어진다고 생각했고, 88퍼센트는 “냄새가 다르다”고 여겼으며, 89퍼센트가 “도덕관념이 느슨하다”고 생각했다. 미시시피는 그런 남부의 대표적인 주였다.

프리덤 서머

KKK와 남북전쟁의 망령이 떠도는 남부, 미시시피

에이브러햄 링컨의 노예해방령이 발표되고도, 미국 민주주의의 역사에서 아프리카계 미국인(흑인)은 ‘시민’이 되기 위해 끝없이 싸워 왔다.

1954년 ‘브라운 대 캔자스 주 토피카 교육위원회’ 판결은 공립학교의 인종분리가 위헌이라고 결정했다. 1955년 말, 앨라배마 주 몽고메리에서 로자 파크스는 버스에서 자신이 선택한 좌석을 포기하지 않았고, 흑인들이 버스 보이콧 운동에 참여하여 공공버스의 인종분리와 차별에 항의했다.

1956년에 연방 법원은 몽고메리 공공버스의 인종분리가 위헌이라고 판결했다. 1957년, 아칸소 주 리틀록에서는 마침내 센트럴고등학교에 흑인 학생 아홉 명이 등록할 수 있게 되었다.

1964년 여름, 세계적인 목화 주산지 미시시피 주에서는 지난날 노예들의 후손들이 여전히 백인 소유의 대농장에서 목화를 따고 있었다. 얼마 전 피살당한 젊고 잘생긴 대통령 존 F. 케네디를 좋아했지만, 흑인 대부분은 그들 손으로 대통령을 뽑지 못했다. 연방의원은 물론이고 주지사나 시장을 뽑는 선거도 할 수 없었다.

미국 헌법이 인종분리와 차별을 금지했지만 백인우월주의와 KKK의 폭력 앞에 흑인들은 무력했다. 당시 미시시피는 인종차별이 심한 남부에서도 가장 심했다. 다른 주의 흑인 투표율은 50퍼센트가 넘었지만 유독 미시시피만은 7퍼센트도 안 되었다. 흑인을 정치권력에서 배제하기 위해 미시시피 백인이 얼마나 극악무도하게 날뛰었는지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테러와 폭력의 공포 앞에서 부른 ‘우리 승리하리라’

1964년 여름, 그야말로 모든 것을 걸고, 목숨까지 걸고 수많은 백인 청년학생들이 미시시피로 가는 버스 앞에 섰다. 같은 시각 또 한 무리의 미국 젊은이들은 수렁에 빠진 베트남전쟁에 참전하고 있었다.

미국 전역에서 자원한 700명이 넘는 대학생은 인종분리와 백인우월주의, KKK의 본거지인 남부로 가기 위해 모였다. 이상주의와 용기, 희망을 품은 젊은이들은 극도의 공포와 좌절감 속에서 “우리 승리하리라”를 부르며 향하는 버스에 오른다. 계절학기와 아르바이트를 잠시 미루고 여름 한 철 활동하기 위해 온 이 학생들은 그 뜨거운 ‘프리덤 서머’에 온몸을 바친다.

“미시시피는 올 여름 지옥이 될 거예요. 우리는 인종차별과 백인우월주의의 중심부로 들어갑니다. … 감히 말한다면, 미시시피 실무자는 모두 적어도 한 번씩 폭행을 당했고 총격을 받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어요. 우리가 갈 곳이 어떤 곳인지 상상하기 어려우실 거예요. 지금은 나도 상상하기 어렵지만, 곧 알게 되겠죠…….”(6월 17일 가족들에게 보낸 크리스 윌리엄스의 편지)

일부 활동가는 버클리 자유언론운동, 반전운동, 여성운동 같은 1960년대를 규정한 사건들의 맨 앞자리에 서게 되고, 뒷날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을 선출하는 데 큰 힘을 보탠다. 또 다른 활동가들은 미시시피에서 흡수한 이상을 퍼뜨리며, 늘 권력을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언제까지나 평범한 민주주의자로 살았다. 젊은 날의 딱 한 철이 그들 마음에 영원히 감동을 준 것이다. 그러나 먼저 그들은 ‘프리덤 서머’에서 살아남아야 했다.

하버드, 예일, 스탠퍼드, 버클리 이른바 명문대 재학생이자 중상류 계층의 자녀들인 이 청년들은 SNCC(학생비폭력실천위원회)와 함께 미시시피에서 활동하는 흑인 민권운동가들과 결합한다. 머나먼 미시시피로 내려가 흑인을 유권자로 등록시키고 자유학교를 열어 흑인 아이들을 교육했다. 가난한 흑인의 판잣집에 머물며 질퍽한 흙길을 걸어 자유와 평등의 메시지를 전했다.

백인 단체의 위협과 폭력, 테러가 난무하는 그곳에서 미국 헌법은 그들을 지켜주지 않았다. 백인 대학생들은 “미국은 과연 어디에 있는가!” 하고 질문을 던진다. 하지만 천천히 때로는 알아챌 수 없을 만큼 느리게, 변화는 미시시피에 찾아왔다.

이듬해인 1965년, 흑인투표권법이 통과되었다. 여섯 달 안에 미시시피 흑인의 60퍼센트가 투표할 수 있었다. 그리고 43년이 지나 미국은 최초의 흑인 대통령을 얻을 수 있었다.

청년들이 모인 날 밤, 인종으로 갈라진 나라에서 최악의 불안을 자극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앤드루 굿먼, 제임스 체이니, 마이클 슈워너, 이 활동가 세 명이 실종된 것이다. KKK에 살해된 것으로 추정되었다. 세 청년의 죽음은 미국을 들끓게 했고, FBI 요원이 파견되고 CIA가 조사에 착수했다.

대중 가수 피트 시거와 해리 벨라폰테가 미시시피로 내려가 민권운동의 대열에 참여하고, 필 옥스는 돌아와서 〈미시시피에 들려주는 노래〉를 지어 불렀다. 린든 존슨, 로버트 케네디, 마틴 루터 킹, 존 루이스, J. 에드거 후버 같은 그 시대의 명망가들이 바삐 움직였다.

프리덤 서머의 기획자이자 민권운동의 소크라테스이자 아리스토텔레스인 밥 모지스와 흑인 성녀 페니 루 헤이머는 애틀랜틱시티에서 열릴 민주당 전당대회에 참여하여 흑인의 실상을 알리고 백인들만의 미국의 민주주의와 미시시피에 이의를 제기했다.

자유와 평등을 향한 드라마, ‘미시시피 버닝’

영화로도 제작된 이 믿을 수 없는 몇 달에 대한 브루스 왓슨의 매혹적인 서술은, 미국 역사에서 가장 눈에 띄는 에피소드에 새로운 빛을 비춘다.

1960년대 미시시피는 남북전쟁의 망령에 사로잡혀 흑인 주권 문제에 폭력으로 대응하는, 시대와 동떨어진 곳이었다. 활동가들이 주 전역에 퍼져 활동하면서 긴장이 고조되었다. 곧이어 폭력이 격화되고 교회가 불타 잿더미가 되었다. 하지만 천천히 때로는 알아챌 수 없을 만큼 느리게, 변화는 미시시피에 찾아왔다. 미시시피 흑인은 목숨을 걸고서라도 자신의 운명을 선택할 자유라는 궁극적 목표를 나날이 더 추구해 갔다.

세 사람의 실종에 대해 마지못해 이루어지는 FBI의 수사 과정이 액자를 이루고 있는 이 감동적인 이야기는 두 줄기로 전개된다. 네쇼바 카운티의 사력댐 아래 묻힌 끔찍한 비밀을 한 줄기로, 그 여름의 활동이 치달은 절정, 1964년 해안도시 애틀랜틱시티에서 열린 민주당 전당대회를 다른 한 줄기로 박진감 있게 펼쳐진다.

이 책은 지난날의 활동가들이 2011년 버락 오바마 대통령 취임사를 지켜보는 장면을 묘사한 에필로그로 끝난다. 누구도 워싱턴 DC에 가지 않고 그저 저마다 자신의 공간에서 TV를 통해 감동적인 장면을 만감이 교차하며 지켜보고 있을 뿐이다.

오피니언: 아시아계 미국인이 잘 나가는 이유

2005년 컬럼비아대학교 졸업식의 한 장면. 아시아계 미국인은 백인을 포함한 다른 어떤 인종보다도 교육 수준이 높다. CreditPeter Turnley/Corbis

다소 난감한 질문이긴 하지만, 아시아계 미국인이 두각을 나타내는 비결은 무엇일까?

미국 학교에서 공부 잘하는 우등생 자리를 유난히 아시아계 학생들이 독차지하는 모습은 어느덧 낯설지 않은 현상이 됐다. 전체 사회로 시선을 돌려봐도 아시아계 미국인들의 성공 사례는 점점 늘어나고 있다. 인구조사 결과를 보면 아시아계 미국인은 백인을 포함한 다른 어떤 인종보다도 평균 소득이 높다. 교육 수준도 모든 인종을 통틀어 가장 높다.

지난해 나는 인종 문제에 관한 여러 편의 칼럼을 썼다. “백인들은 인종 문제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When Whites Just Don’t Get It)”는 제목의 칼럼에서는 인종 간의 구조적인 불평등 문제를 정면으로 다뤘다. 이 칼럼의 내용 때문에 단단히 화가 난 백인 독자들의 반응을 정리하면 대략 이런 내용이었다.

“백인이 여전히 구조적으로 특권을 누리고 있다는 이 칼럼은 한마디로 헛소리다. 흑인들이 성공하지 못하는 이유는 아마도 흑인 공동체 내부에 무슨 문제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아시아계 미국인들을 봐라. 한국 사람들, 중국 사람들이 미국에서 성공하는 건 그 사람들이 정말 열심히 살기 때문이다. 모든 걸 사회 탓, 구조 탓으로 돌리며 불평할 시간에 열심히 일하고 공부하면 누구든 미국에서는 성공할 수 있다.”

이러한 주장에 지금부터 정면으로 반론을 펼치려 한다. 아시아계 미국인들이 성공을 거두는 건 미국에서 인종차별이 사라졌다는 방증일까?

신간 학술서 “아시아계 미국인의 성취 역설”의 공저자 제니퍼 리와 민 저우는 먼저 지난 수십년간 미국으로 건너온 아시아계 이민자들이 갖추고 있던 명백한 이점에 주목한다. 바로 이들의 교육 수준이 미국 전체 평균보다 높았다는 점이다. 아시아 국가에서 미국으로 이민 온 사람들 가운데는 의사나 과학기술 분야의 연구원, 또는 고등 교육을 받은 전문직 종사자 비중이 높은 편이다.

의사를 비롯해 교육 수준이 높은 고소득층 부모에게서 태어난 자녀가 미국에서 성공할 가능성이 큰 건 놀라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리 교수와 저우 교수는 책에서 아시아계 미국인은 소득 수준이 반드시 높지 않은 노동자 계급이나 서민 가정에서 태어나더라도 경제적으로 더 높은 소득 계층에 진입할 확률이 상대적으로 훨씬 높다는 사실을 지적했다.

이를 인종 간 지능의 차이 때문이라고 단정지을 수는 없다. 지능의 차이가 경제적 성공과 그에 따른 계층 이동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주장을 뒷받침할 만한 근거는 많다. 그 가운데 심리학자 리처드 니스벳 교수가 쓴 책의 내용을 살펴보자. 니스벳 교수는 미국인 어린이 가운데 중국계와 백인 어린이들의 IQ를 어려서부터 성인이 될 때까지 추적한 연구 결과를 인용했다. 처음 연구를 시작했을 때 측정한 두 그룹의 IQ는 똑같았다. 하지만 실험 참가자들 가운데 아시아계의 경우 55%가 직장 내에서 높은 위치까지 올라갔지만, 백인들 가운데 고위직에서 일하게 된 사람은 실험 참가자의 1/3에 그쳤다. 관리자로서 성공하는 데 요구되는 IQ를 비교해보면, 백인들은 100을 넘어야 했지만, 중국계 미국인들의 경우 93만 넘어도 관리직을 맡았다.

니스벳 교수는 아시아계 미국인이 가진 뛰어난 점을 이해하려면, IQ로 표현되는 지능 자체가 아니라 여러 가지 재능이 어떻게 발현되고 활용되는지를 살펴봐야 한다고 지적한다.

동의하지 않는 사람도 있겠지만, 우선 교육을 대단히 중시하는 동아시아 전반의 뿌리깊은 유교 문화를 원인으로 꼽지 않을 수 없다. 교육열은 다른 어떤 민족보다 1,700년이나 앞서 남성 모두가 글을 읽고 쓸 수 있었다는 유대인의 이례적인 성공 비결로도 꼽힌다.

KKK는 빙산의 일각, 미국의 충격적인 인종차별 단체수

트럼프 발언을 계기로 본 미국의 인종차별주의 단체들

KKK는 빙산의 일각, 미국의 충격적인 인종차별 단체수

“시위대와 백인우월집단 모두 비난받아야 하는 데 의심할 여지가 없다.”

지난 12일 미국 버지니아주 샬러츠빌에서 백인우월주의자들과 이를 반대하는 사람들과의 사이에 유혈충돌이 발생하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같이 말했다.

그러자 백인우월주의자들과 극우성향의 단체들은 일제히 찬사를 보냈다. 그러나 인종차별주의에 반대하는 많은 사람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인종차별주의를 두둔하는 듯한 발언이 극히 우려스럽다는 반응을 보였다.

트럼프 대통령의 인종 차별주의에 대한 비상식적인 인식은 그동안 여러차례 목격됐다. 대통령 후보 시절에 그는 미국과 멕시코 국경에 거대한 벽을 세우겠다는 식의 히스패닉 비하 발언과 ‘모든 무슬림의 미국 입국 금지’와 같은 무슬림 증오 발언 등을 통해 인종 문제에 대한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냈다.

물론 트럼프 대통령은 인종 차별 정서가 가득한 발언으로 비난받을 때마다 자신이 다양한 인종 집단과 사업을 하고 있다는 점을 들어 인종주의자가 아니라고 반박하려 애써왔다.

샬러츠빌 사태 희생자를 애도하는 꽃들(사진=EPA연합뉴스)

샬러츠빌 사태 희생자를 애도하는 꽃들(사진=EPA연합뉴스)

◆트럼프 공개지지한 KKK는 어떤 단체인가

이같은 트럼프 대통령의 노력(?)에도 미국의 인종주의자들은 트럼프를 칭찬하고 지지해왔다.

대표적인 사례가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백인우월단체인 쿠클럭스클랜(KKK)이다. KKK는 그리스어에서 따온 말로 ‘비밀결사’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이 단체는 남북전쟁이 끝나고 노예제가 폐지된 1866년경 미국 남부 테네시 주에서 퇴역 군인들에 의해 결성됐다.

KKK 엠블럼

KKK 엠블럼

결성 초기 KKK는 위협과 공갈, 협박으로 백인의 지배권 회복을 꾀했다. 그러다 세력이 커지면서 흑인과 흑인해방에 동조하는 백인들을 구타하거나 그들의 집을 불태우고 폭행을 가하는 등 보다 잔인한 테러도 서슴지 않았다.

특히 선거 때 투표소에 얼굴을 내민 흑인들은 예외 없이 KKK에게 잔혹한 보복을 당했다고 한다.

KKK의 위세가 절정에 달했던 1920년대에는 단원 수가 약 500만명에 달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KKK의 지지를 받은 정치인이 주지사나 상원의원으로 선출되는 일도 적지 않았다.

심지어 미국 29대 대통령인 워런 하딩은 백악관에서 성경책을 들고 KKK에 가입하기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KKK(사진 = 위키피디아)

KKK(사진 = 위키피디아)

그 후 KKK는 2차 세계대전을 기점으로 다시 세력이 약화되었다가 1960년대 들어 흑인 민권운동이 본격화되면서 그에 대한 반동으로 미국 각지에서 재등장해 현재까지 명맥이 이어지고 있다.

특히 이들은 트럼프의 당선을 전후로 다시 미국 전역에서 세를 모으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KKK는 미 대선 당시 트럼프를 공개 지지하며 새 단원을 모집할 때 트럼프의 여러 인종차별주의적인 발언을 사용했다.

KKK의 전 지도자인 데이비드 듀크는 미국 대선 전에 자신이 진행하는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트럼프를 뽑지 않는 것은 당신들 유산에 대한 반역”이라고 발언했다.

미국에 분포한 증오단체들(SPLC)

미국에 분포한 증오단체들(SPLC)

◆KKK 외에도 수백개에 달하는 인종차별단체 미국에 버젓이 존재

미국에서 활동하는 증오단체는 트럼프를 공개적으로 지지하는 KKK 외에도 수백여곳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된다.

미국의 비영리 인권단체 남부빈곤법률센터(SPLC)에 따르면 미국 내 증오단체들은 2014년 이후 17% 증가했으며 현재 917개에 달한다. 이는 1999년에 비해 2배 가량 늘어난 수치다.

센터에 따르면 미국 내 증오단체 규모는 2014년을 기점으로 다시 증가세를 보였으며, 백인 민족주의자들의 지지를 받았던 트럼프가 공화당 대선후보로 나왔던 2016년에도 이런 추세는 이어졌다.

증오단체 중에 가장 극단적이고 주목을 받는 단체는 백인우월주의 단체들이다. KKK외에도 수백개가 넘는 백인우월주의 단체들이 곳곳에서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샬러츠빌 사태에 등장한 신나치(트위터 캡처)

샬러츠빌 사태에 등장한 신나치(트위터 캡처)

신나치주의자들 역시 미국에서 득세하고 있다. 신나치(네오나치) 단체는 미국 전역에 100여곳에 이른다. 이들은 KKK와 함께 이번 샬러츠빌 유혈사태의 주범으로 꼽히기도 했다.

이들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대표 슬로건인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등의 문구가 쓰인 티셔츠를 입고 나치 깃발이나 남부연합 깃발을 흔들며 시위를 벌였다.

미국 언론들은 미국의 신나치가 나치 깃발을 휘둘렀을 뿐 아니라 나치식 경례를 하고, 나치처럼 횃불 행렬을 조직했다고 보도했다. 미국은 과거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나치와의 싸움에서 20만여명이 전사한 나라기도 하다.

최근 몇년 사이에는 무슬림 증오 단체들이 득세하고 있다. 미국의 무슬림 증오단체는 2010년 5개에 불과했지만 현재는 100여개에 이른다.

덩달아 무슬림 혐오범죄도 급증했다. 미 연방수사국(FBI) 데이터에 따르면 2015년 미국에서 257건의 반 이슬람 혐오 범죄가 발생했다. 이는 전년도 기록했던 154건에 비해 크게 증가한 수치다.

이밖에도 흑인 분리주의 단체, LGBT(성소수자) 반대 단체, 스킨헤드족 등 미국에는 다양한 인종차별단체 등이 존재한다.

미국, ‘인종 차별 정책’을 먹고 사는 나라

미국에는 ‘바나나 공화국(banana republic)’이라는 말이 있다. 미국식 교육을 받고, 철저하게 미국의 사고방식을 가지며, 미국의 뜻에 잘 따르는 정치인들이 지배하는 정부를 가리키는 말이다. 이 말은 원래 친미를 넘어 숭미에 가까운 정치인들이 지배하는 나라를 일컫는 말이었는데, 요즘에 와서는 그 의미와 대상이 확장된 것 같다.

바나나는 껍질은 노란색이지만 껍질을 벗겨내면 속은 흰색이다. 미국, 특히 백인들이 말하는 바나나 공화국이란 ‘동양인, 황인종이면서도 철저하게 미국식의 사고와 행동을 따라가려는 사람들’을 말하는 것이다. 이 말에는 미국에 대한 맹목적이고 무조건적인 애정과 믿음을 보이는 동양 사람들에 대한 비웃음의 의미가 들어 있다. 동시에 서양인과 동양인은 다르다는 백인들의 인종 차별 의식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현재의 우리의 모습은 어떠한가? 미국의 백인들이 바라보기에 우리나라는 전형적인 바나나 공화국 시민들이 아닐까. 많은 학생들과 직장인들이 영어를 ‘세계 공용어’라 여기고 목을 매고 있는 나라, 어학연수는 필수이고 조기 유학은 아이를 위한 최선의 투자라고 생각하는 나라, 원정출산까지 당당하게 감행하는 나라, 발음을 위해서라면 아이에게 혀 수술까지 시키는 나라, 무엇보다도 한 국가의 중심인 수도라는 곳에서 영어를 쓰지 못해 안달이 나서 눈에 보이는 곳곳마다 영어를 표기하려 애쓰는 나라. 이것의 우리의 현주소가 아닐까.

얼핏 보기에 미국은 분명 자유와 평등의 땅, 기회의 땅이다. 자본주의의 중심이자 민주주의 상징인 미국은 열심히 일하기만 하면 누구나 성공할 수 있는 나라로 여겨져 왔다. 그러나 기회와 부라는 신화 뒤에 추악한 인종 차별 정책이 있어 왔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은 것 같다. 기회와 부는 언제나 백인의 몫이었고 피부 색깔이 다른 사람의 몫은 아니었다.

흔히 미국을 이야기할 때 엘리스 섬에 있는 ‘자유의 여신상’을 빼놓지 않는다. 수많은 사람들이 ‘자유의 여신상’을 보면서 감격스럽게 자유와 평등과 정의를 이야기한다. 원래 엘리스 섬은 유럽계 백인들이 도착하여 간단한 입국수속을 밟고 뉴욕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관문이었다.

유럽 사람들에게 미국은 기회와 황금의 땅이었고, 미국의 수정헌법이 명시하듯 만인이 ‘평등’한 땅이었다. 엘리스 섬은 유럽 사람들에게 있어서만큼은 ‘자유’의 상징이었다. 그렇지만 그 이면에는 억압과 수탈, 노예로서의 삶을 상징하는 ‘에인절 섬’과 ‘설리번 섬’이 존재하고 있었다.

대부분의 미국인은 물론 한국인과 세계인들은 에인절 섬과 설리번 섬에 대해 전혀 들어본 적이 없을 것이다. 에인절 섬에는 아시아인 이민자들이 거쳐야 하는 검문소가 설치돼 있었다. 1910년 문을 연 에인절 섬 검문소는 아시아인 이민을 억제하기 위한 일종의 이민자 수용소였다. 중국계 이민자들은 에인절 섬에 내린 후, 합법적으로 미국에 왔다는 것이 증명될 때까지 최소 3일에서 최고 3년까지 이곳에 갇혀 있어야 했다.

한편 흑인 노예들은 설리번 섬에 노예로 팔려 왔다. 동물처럼 쇠사슬에 묶인 채 노예선에 실려 온 흑인 노예들은 굶어죽거나 학대에 못 이겨 죽어갔고, 병들면 헌신짝처럼 바다에 버려졌다. 혹독한 노예선의 여정에서 겨우 살아남은 흑인들이 도착한 곳이 바로 설리번 섬이었다. 자유인이 아닌 노예로서 말이다. 에인절 섬과 설리번 섬은 수탈과 압박 그리고 노예로서의 새로운 삶이 시작되는 또 다른 미국의 관문이었던 셈이다.

‘만인은 평등하게 태어났다’고 명시한 수정헌법은 유럽에서 이주한 백인 이민자들에게만 의미가 있는 법이었다. 이 법은 ‘백인 이민자들만이 계급과 신분에 상관없이 법의 보호를 받는다’는 것만을 의미했다. 백인들이 보기에 유색 인종은 미국의 시민이 될 수 없는 전혀 다른 인종 혹은 이등국민일 뿐이었다. 이처럼 미국의 인종 차별 정책은 유래가 깊다.

원래 동양인이나 흑인들은 값싼 노동력을 위해 미국이 데리고 온 사람들이었다. 또한 백인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통해 그들의 임금을 올리고 권익을 신장시키자, 그것을 와해시키기 위해 동양인이나 흑인들을 노동자로서 고용한 것이었다. 자본가들은 같은 노동자이면서도 백인, 흑인, 황인의 피부색깔을 내세우며 백인을 일하는 자유인으로 강조하고 황인과 흑인보다 우월한 인간이라는 환상을 심어주어 노동조합을 와해시켰다.

값싼 노동력을 위해 데리고 온 중국인의 수가 너무 많아져서 백인들과 일자리를 위한 경쟁 상대가 되자 ‘중국인 이민 금지법’을 제정한 예에서 볼 수 있듯이 미국은 백인의 이익을 위해 소수 민족을 차별하는 백인 특권 사회인 것이다. 이처럼 처음에는 값싼 노동력을 위해 이민 정책을 장려하다가 어느 순간 백인들의 권익 보호를 위해 이민을 억제하는 예는 일본이나 필리핀 사람들의 이민 모습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자국의 경제 사정에 따라 이민을 장려하거나 억제하면서 소수 민족을 그들의 희생물로 삼아온 것이다.

동양 사람들은 백인들의 세계를 발전시키기 위한 수단이었지 동등한 권리를 가진 인간은 아니었다. 서양이 동양을 표현할 때 흔히 말하는 ‘오리엔탈’이라고 말한다. 이 표현은 서양이 동양을 차별과 수탈의 대상으로 여기고 이등시민으로 업신여기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또한 오리엔탈이라는 표현은 ‘오리엔탈 음식’, ‘오리엔탈 옷’처럼 사람보다는 사물을 지칭할 때 많이 쓰이는 표현이다. 결국 서양이 보는 동양, 백인이 보는 아시아인은 ‘사람’들이 아니라 ‘물건’에 지나지 않은 것이었다.

최근 들어 미국에 살고 있는 중국, 한국, 필리핀, 인도 등의 아시아계 사람들이 모여 차별의 의미를 갖고 있는 ‘오리엔탈’이라는 단어를 거부하고 ‘아시안 아메리칸’이라는 새로운 말을 쓰기 시작했다. 이는 미국 내 아시아계 소수 민족들이 더 이상 이방인이기를 거부하고 또 다른 미국의 구성원임을 강조하는 뜻 깊은 일이다.

뿌리 깊은 미국의 인종 차별 정책은 국내외 많은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지금의 중동 문제가 백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이스라엘에 대한 전폭적인 지지에서 비롯된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라크에서 벌어진 미군의 포로들에 대한 학대와 인권 모독은 미국이 이라크의 민주주의를 위해 들어간 것이 아니라 침략했다는 사실을 백일하에 드러냈다. LA 흑인 폭동과 한흑 갈등, 소수 민족 간의 갈등 역시 백인 특권 의식과 인종 차별 정책의 그 주요한 원인이다.

콜럼버스가 발을 디딘 미국은 원래 인디언의 땅이었다. 백인들이 보기에 미국은 새로 발견한 땅이지만, 원주민들인 인디언들의 처지에서는 그들은 침략자일 뿐이다. 그러나 미국은 이러한 침략의 역사를 자본주의의 발달사라는 그럴듯한 포장으로 가려 놓고 있다. 소수 민족에 대한 시각도 이와 비슷하다. 미국을 위한 소수 민족의 희생과 업적을 숨긴 채, 백인들의 우월성, 우수성만을 강조하고 있다.

미국은 다민족, 다인종으로 이루어진 국가지만 ‘백인만의 국가’를 만들려는 백인 지도자들은 이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침략과 폭압의 역사는 감추고 백인들만을 미화시킨 미국, 그러나 대부분의 미국 유학생은 이러한 미화된 백인의 역사만을 배우고 와서 퍼뜨리고 있다. 결국 우리는 온전하게 미국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 백인의 입장에서 미국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아시안 아메리칸>(책세상)은 인종 문제를 중심으로 미국의 숨겨진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과연 미국이 아름다운 나라인가, 아니면 추악한 나라인가의 판단은 미국을 좀더 확실히 알아보고 난 후에 평가하라고 말하고 있다. 자유와 평등, 억압과 수탈이라는 두 얼굴의 나라 미국, 지금껏 우리는 한 면만을 봐왔다고 말하는 이 책은 그 양에 비해 묵직하다.

미국의 인종차별

내가 유학을 갔던 1960년대 초에만 해도 미국의 인종차별은 심했다. 흑인은 물론 동양인들에 대한 차별도 심했다. 특히 한국 사람들을 더욱 무시했다. 그 이유는 한국이 가난하고 도둑이 들끓는 지저분한 나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그 당시 많은 한국인 여자 유학생들은 자신이 일본에서 왔다고 속였다. 일본은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었기 때문에 동양에서 가장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미국에서도 일본의 경제발전에 항상 찬사를 보냈기 때문에 자연히 미국에 있는 일본인들의 대우는 비교적 높았다. 동양에서의 가장 바닥인 한국 학생들은 너무나 못사는 한국을 원망하며 차별대우를 감수해야만 했다.

이런 일들이 바로 엊그제 같았는데 오늘의 미국은 인종차별이 많이 사라졌고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인종에 관대한 나라 여러 인종이 서로 양보하며 조화롭게 사는 나라라고 평가 받고 있다.

그나마 이 정도로 화목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은 그 동안의 꾸준한 반인종차별 운동과 반인종차별 법안 등 오직 미국만이 할 수 있는 노력 끝에 얻은 성공 덕분이다.

미국에는 별의별 사람들이 모여 자기들끼리의 독특한 문화를 계승하면서도 아메리카라는 테두리 안에서 법을 지키면서 질서 있게 사는 모습은 자랑할 만하다. 하지만 남미 계통 사람들의 계속되는 불법 이민들 없어지지 않는 뿌리 깊은 흑인들에 대한 차별은 아직도 미국 사회의 뼈아픈 고통 중 하나다.

문제는 흑인에 대한 Perception(선입견 인식)이다. 이 선입견은 흑인들의 범죄률이 가장 높고 감옥에 구금되어 있는 죄수들 중 흑인이 과반수를 훨씬 넘는다는 등의 신문 보도를 보고 흑인을 만나면 범죄부터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좁은 골목에서 흑인 4~5명과 마주쳤을 때에는 공연히 섬뜩해지고 결국 피해가게 된다. 이를 보는 흑인의 입장에서는 자기들이 흑인이라는 이유 하나로 피해가는 것을 인종차별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아직도 백인 부모들은 자기 자식이 흑인과 결혼하는 것을 결코 환영하지 않고 이를 막으려 애쓴다. 이는 동양사람인 경우에는 더욱 심하다. 법적인 인종차별은 거의 없어졌지만 사회적 차별은 아직도 여전하다.

성공한 흑인들은 백인 동네에 섞여 살면서 전혀 인종 차별을 느끼지 못하지만 뒤쳐진 흑인들은 교육시설도 부족하고 환경도 좋지 않은 흑인 지역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고 몇 대를 흑인 촌에서 살면서 주류사회와 격리된 생활을 해왔다. 이것을 게토 지역이라고 부르면서 백인들이나 심지어는 한국인들도 이런 동네에 가기를 꺼려한다.

하지만 이렇게 모두가 꺼리는 흑인 동네의 소규모 편의점이나 주류판매점이 오히려 장사가 잘된다고 알려져 있어 많은 동포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흑인 동네에서 장사를 한다. 그래서 폭동이 날 때 마다 한인상점들이 피해를 보게 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미국 역사상 가장 컸던 최악의 흑인폭동이 바로 1992년 4월 29일 LA에서 일어났다. 4.29 폭동은 흑인을 몽둥이로 때린 3명의 백인 경찰이 법정에서 무죄판결을 받은 데 분개한 흑인들이 들고 일어선 것이다.

폭동은 LA 남쪽 왓슨이라는 흑인 동네에서 시작돼 백인 동네인 북쪽을 향해 올라오기 시작하면서 닥치는대로 파괴시켜 최악의 기록을 남겼다. 이들이 북상하는 길목에 교묘하게도 코리아타운이 위치해 있어 데모 행렬이 코리아타운을 뚫고 백인타운으로 몰려가려고 했다.

하지만 한인들의 조직적이고 완강한 저항에 부딪혀 결국 백인 동네까지 도달하지 못하고 한인타운에서 좌절되고 말았다. 1만 명의 주방위군이 투입되어 폭동은 완전히 진압되었고 이 과정에서 58명이 사망하고 2100명이 구속되었으며 여기저기 방화.약탈이 수없이 많았고 마지막 결전을 벌였던 한인타운의 경제적인 손실도 무척 컸다.

이번 미주리주 퍼거슨 흑인 도시의 폭동은 그 규모가 훨씬 작았고 주지사의 신속한 비상사태 선포 통행금지령 급기야 주방위군 투입으로 폭동 확산은 없었고 한인상가 손실도 한 곳밖에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더욱이 오바마 대통령이 긴급히 법무장관을 현장에 파견하고 FBI를 동원해 진상조사를 실시했고 이런 민첩한 대응으로 폭동은 안정되었다. 그 결과로 이제는 주방위군도 철수했고 평화를 되찾았다.

1992년 4.29 폭동 때와는 달리 미국 흑인들의 사회적 지위나 경제력도 엄청난 속도로 향상되었고 백인들의 지지로 흑인인 오바마 대통령이 재선까지 된 지금 인종차별을 외치는 자체가 먹히지 않는다. 센서스에 의하면 2042년이면 미국 내 전체 백인의 비중은 50%에 못 미치는 소수민족이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그래도 인종차별에 가장 관대한 나라는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역시 미국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가난한 한국인이라고 멸시 받던 내가 미국의 최고기관인 의회의원을 3선까지 하게 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미국 동양인에 대한 미묘한 인종차별

여름 휴가철이 되면 온라인 여행 게시판에는 종종 인종차별에 대한 질문이 올라오곤 한다.

“레스토랑에서 이런 이런 대우를 받았는데 이거 인종차별인가요?”라거나 “미국을 처음 방문하려고 하는데 정말 인종차별이 심한가요?” 혹은 “요즘 미국에서 백인 우월주의자들의 시위가 있다는데 방문해도 괜찮을까요?” 등이다.

낯선 땅에서 인종차별을 받을 생각에 걱정도 되고 또 한편으로는 불쾌한 경험을 했지만 이것이 인종차별인지 혹은 단순히 그 사람이 인성이 나쁜 사람인지 확신이 서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은 다른 나라에 비해서 다양한 인종이나 문화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인종의 다양성을 경험해보지도 못했고 인종차별을 받은 경험도 드물어서 이런 질문이 나오는 것이다.

사실 미국의 경우 워낙 다양한 인종과 문화가 뒤섞여 있기 때문에 관광객이 대놓고 인종차별을 겪을 가능성은 높지 않고, 인종차별이라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영어를 잘 하지 못하기 때문에 오는 ‘언어적 오해’ 혹은 ‘언어 차별’을 경험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일부 관광객들은 분명히 인종차별을 경험하기도 하고 영어가 유창하지 못해서 이를 항의하지도 못하고 속으로만 분을 삭여야 하는 경우도 있다. 관광객이 아닌 미국 현지에 거주하는 사람들도 예외는 아니다. 오히려 더 눈에 띄지 않고 인종차별이라고도 말하기 애매한, 알 수 없는 ‘차별’ 혹은 ‘기분 나쁨’을 경험하기도 한다.

미국에서 인종차별은 과거 흑인 노예제도에서 시작된 차별을 없애는 데 주력한 나머지 상대적으로 소수인 황인종, 동양인들에 대한 차별은 거의 언급이 없거나 동양인에 대한 차별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는 것이 문제점이다.

미국에 비교적 늦게 이민을 시작한 동양인들은 노예로 끌려온 흑인들과 달리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들도 많고 유학을 통해서 정착한 경우가 많아서, 사회에서 인정받는 직업과 높은 소득을 받으니 사회적 차별이 없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미국의 유명 온라인 매체인 ‘버즈피드(BuzzFeed)’가 만든 비디오는 ‘뭐라고 꼭 집어서 지적할 수는 없지만 무언가 기분이 개운치 않은’ 동양인에 대한 차별적인 시선을 잘 묘사해서 크게 호응을 얻었다. 버즈피드는 2006년 설립된 온라인 미디어로 2015년 한국에서도 매체들을 떠들썩하게 했던 뉴스, 즉 ‘보는 사람에 따라 색상이 다른 드레스’ 기사를 만든 곳이다. 사람들의 관심을 끌 만한 뉴스로 <뉴욕타임즈>의 최고 경쟁자로 지칭될 만큼 미국에서 큰 인기를 누리고 있다.

버즈피드가 시리즈물로 선보인 비디오 중 하나가 ‘만일 백인들이 말하는 것을 동양인이 말했다면(If Asians said the stuff White people say)’로 이는 미국으로 이민 온 동양인들, 혹은 이들의 자녀들이 겪은 내용들을 코미디 형식으로 만든 것이다.

백인들이 별 생각 없이 동양인들에게 평소에 하는 말이 사실은 인종차별적이거나 선입견을 갖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백인과 동양인을 서로 바꿔서 역할을 맡게 한 것이다.

동양인이 백인 친구에게 ‘너 고향이 어디라고?’라고 질문하자 백인 친구는 ‘테네시’라고 말했지만 동양인 친구는 ‘아니, 거기 말고 진짜 네 고향이 어디냐고’라고 재차 질문을 하고 백인 친구는 어이없는 표정을 짓는다. 정말 어이없는 질문이라고 생각되지만 실제로 미국에서 거주하는 많은 동양인들이 이와 같은 질문을 받곤 한다.

고향이 어디냐는 질문에 자신이 나고 자란 지역인 뉴욕, LA, 시카고 등의 이름을 대지만 대부분은 ‘아니, 정말로 니가 어디서 왔냐’고 물어서 기어이 ‘나는 뉴욕에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우리 할아버지는 한국에서 오셨다’는 답변을 듣고서야 ‘아, 넌 한국에서 왔구나’라고 만족하는 경우가 많다.

이 비디오에서는 동양인이 백인 친구에게 ‘너 정말로 영어를 잘하는구나, 어디서 영어를 배웠어?’라는 얼토당토않은 질문을 하기도 한다. 실제로 많은 미국인이 동양인들은 이제 갓 이민 온 것으로 간주해서 이민 3세대쯤 되어 미국에서 나고 자라 한국말이나 중국말을 아예 못 하거나 서툰 동양계 미국인에게 영어 실력을 칭찬하는 황당한 경우도 종종 있다.

이런 선입견으로 인해 미국에서 나고 자란 동양계 미국인이 영어로 발표하는데 ‘네 억양이 너무 강해서 영어를 잘 못 알아듣겠다’면서 ‘영어 좀 더 연습하라’고 하는 미국인 상사의 에피소드도 아시안계 미국인들 사이에서는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동양인 친구가 자신의 눈을 손가락으로 크게 만들고서는 ‘날 봐, 백인 같지?’라고 말하거나 ‘나는 피자를 너무 좋아하는 걸 보니 사실은 이탈리안이었나 봐’라는 내용도 있는데 어이없는 이런 경험도 사실 많은 아시안계 미국인들이 경험한다.

한국인이라는 말에 ‘나 김치 정말 좋아하는데, 내가 전생에 한국인이었나 봐’라고 하거나 눈을 모아서 작게 만들고서 ‘나 아시안처럼 보이지 않아?’라는 행동은 사실 드물지 않다.

만일 아시안이 피자나 와인을 좋아한다고 나는 이탈리안이거나 프랑스인인가 봐라고 했다면 단박에 백인이 되고 싶어서 미친 사람처럼 취급받을게 뻔하다. 그런데 백인이 김치 한 조각 먹고서 나는 한국인인가 봐라고 하면 왜 한국에 대한 칭찬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인지 이해가 안 될 뿐이다.

스타벅스 사태로 본 美인종차별 백태 ‘여전히 중증’

청소부는 유색인종 연상시킨 켈로그 시리얼 박스 뭇매서
美 최대 월마트, 매장에 흑인 비하·차별 의식 종종 노출
유나이티드항공 작년 오버부킹서 아시안 끌어내 논란 확산
경찰, 흑인들에 과잉 대응·총기 사격 남발 많아 비판도

지난 12일(현지시간) 미국 필라델피아의 한 스타벅스 매장에서 인종차별 논란이 거세게 불거지면서 미국 사회에서 여전히 횡행하고 있는 인종 문제에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미 주류 사회를 백인 일색으로 채우던 과거에 비해 흑인이나 아시안, 히스패닉 등의 성공 사례가 크게 증가했지만 사회 저변에 인종 차별은 여전히 뿌리 깊고 곳곳에서 심심찮게 발생하고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제기된다.

케빈 존슨 스타벅스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15일 성명을 통해 “스타벅스는 인종차별에 단호하게 반대한다”면서 흑인 남성 2명을 직접 만나 사과하고 싶다는 뜻을 밝혔고 이후 시애틀 본사에서 필라델피아로 날아가 피해자들에 사과했다.

스타벅스의 한 직원은 매장에서 음료를 주문하지 않고 자리에 앉아 일행을 기다리던 흑인 남성 2명을 경찰에 신고해 무고한 시민이 수갑이 채워진 채 연행되는 어이없는 사건이 발생했다.

인종 차별을 방조했다는 비난이 미 전역에서 들끓자 스타벅스는 존스 CEO의 사과에 앞서 미국내 8,000여 곳의 스타벅스 직영 매장에 대해 다음 달 29일(현지시간) 일시적으로 문을 닫고 인종차별 방지를 위한 ‘직원 교육’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스타벅스 사태로 본 美인종차별 백태 ‘여전히 중증’
경찰들이 지난 12일(현지시간) 미국 필라델피아의 한 스타벅스 매장에서 흑인 남성을 체포하고 있다.

스타벅스의 인종차별 논란은 이전에도 몇 차례 발생해 논란이 된 바 있다. 음료 주문을 받은 직원이 손님에게 ‘찢어진 눈’을 그린 컵에 음료를 제공해 동양인 비하 논란이 일기도 했으며 최근에는 백인 손님은 음료 주문 전에도 화장실 사용을 허용했는데 흑인 고객은 거부해 차별 지적이 제기됐다.
맥도널드와 함께 미국 내 최대 프랜차이즈 업체로 스타벅스 매장이 미 전역에 없는 곳이 없어 인종차별 논란이 많이 일어난다는 지적도 있지만 기업 임직원들의 인종 차별 행태는 업종과 직역을 막론하고 비일비재하게 생겨나고 있다.

AP통신 등 미 언론은 지난해 10월 켈로그사가 자사의 시리얼 박스에 인종차별을 연상하게 하는 디자인을 선보였다고 꼬집었다. 켈로그는 시리얼 제품인 ‘콘 팝스’의 디자인에 쇼핑몰을 청소하는 직원만 얼굴이 진한 갈색으로 그려넣어 “청소부는 유색 인종이 한다”는 편견을 심어 넣었다는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켈로그는 논란이 확산되자 “이번 비판을 매우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며 사과하고 새로운 포장 디자인을 내놓기로 했다.

미국 최대의 할인점 체인인 월마트에서도 인종 차별 사건은 번번이 발생하고 있다. 월마트는 지난해 온라인 홈페이지에 흑인을 비하하는 속어인 ‘니거’(Nigger)를 썼다 뭇매를 맞은 바 있으며 최근에는 흑인 헤어제품의 진열대에만 유리문을 달고 열쇠를 채워 놓아 아프리카계 흑인들이 불매 운동을 벌이겠다고 강력 반발하기도 했다.

미 주요 항공사 중 한 곳인 유나이티드항공도 지난해 ‘오버부킹’ 상황에서 아시아계 고객에게 폭력을 쓰면서까지 비행기 밖으로 쫓아내 여론의 질타를 받았다. 유나이티드항공은 이전에도 승무원으로 추정되는 직원들이 아시아나항공 사고기 조종자들을 조롱하는 복장을 하고 사진을 촬영해 논란이 된 바 있다.

미국에서 인종차별 문제가 가장 심각하게 드러나는 것은 경찰의 사건·사고 대응에서다. 경찰들이 흑인 용의자에게 과잉 대응을 남발하다 소중한 생명을 앗아가고 이 과정에서 지역 흑인 사회가 들고 일어나는 일은 좀처럼 줄어들지 않고 있다.

스타벅스 사태로 본 美인종차별 백태 ‘여전히 중증’
한 흑인이 자신은 ‘위험인물’이 아니라는 팻말을 들고 행진하고 있다.

지난 4일 뉴욕 브루클린에서 한 흑인 남성이 손에 든 파이프를 경찰들이 총으로 오인하면서 10발이나 사격을 가해 사망한 사건이 발생하면서 경찰의 과잉 대응 논란은 다시 불붙었다. 특히 이날은 흑인 인권운동의 대부인 마틴 루서 킹 목사 서거 50주기로 미 전역에서 추모 행사가 진행된 날이어서 흑인들의 반발이 더욱 거셌다. 지난달 18일 캘리포니아주 새크라멘토에서도 흑인 청년 스티븐 클라크(22)가 지닌 아이폰을 경찰이 총기로 오인해 20발 가량이나 발사해 무고한 청년이 사망하기도 했다.

미 언론들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해 취임한 이후 인종 문제가 갈수록 악화하고 있는 추세라고 일제히 목청을 높이고 있지만 소수 인종의 권익 향상과 위상 강화는 쉽게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고 있다는 주장들이 힘을 얻고 있다.

 

마틴 루터 킹 이후 50년, 미국의 인종 문제는?

1963년 8월 28일, 마틴 루터 킹 목사가 워싱턴에서 역사적인 연설을 남긴지 50년이 흘렀고 그간 미국 사회는 엄청나게 달라졌습니다. 흑인이 투표를 했다는 이유만으로 린치를 당하던 시절을 지나, 수 많은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이 정재계의 고위직에 진출했고 영화 속에서 흑인 배우가 신 역할을 하는 세상이 왔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인종 격차는 경제적인 부분을 중심으로 일부 뒷걸음치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2001년에서 2011년 사이, 흑인 가계 소득의 중간값은 백인 가계 소득 중간값 대비 64%에서 58%로 오히려 하락했습니다. 부동산 거품 붕괴가 저소득 계층에 더 큰 타격을 입힌 관계로 재산 상 흑백 격차도 2005년부터 2009년 사이 더욱 크게 벌어졌습니다. 교육이나 범죄 부문에서도 차이는 여전합니다. 기본적인 읽기와 산수 능력에서도 17세 흑인 학생의 평균 성취도는 13세 백인 학생의 수준에 불과하고, 30-34세 백인 남성 61명 중 1명이 수감 중인데 비해 흑인 중 수감자 비율은 10명에 1명 꼴이죠. 결혼 제도 밖에서 태어나는 흑인 아이들의 비율은 60년대 25%에서 오늘날 72%로 오히려 급증했습니다.

이와 같은 현상에 대해서는 크게 두 가지 설명이 있습니다. 우선, 인종차별주의의 잔재가 여전히 흑인들에게 불리하게 작용하고 있다는 설명입니다. 흑인들이 많이 다니는 학교가 재정지원을 못 받고, 사법 체계와 일자리 시장에서 흑인에 대한 편견이 여전하다는 것이죠. 하지만 적어도 인종차별주의가 더 심해지고 있다고는 보기 힘든 것이 현실입니다. 개인이 인종 차별 발언을 했다가는 커리어가 끝장나고, 기업은 가차없이 불매운동과 법적 제재를 마주하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죠. 대학 학위를 받은 백인 여성과 흑인 여성의 소득 수준은 거의 같습니다. 때문에 보수주의자들은 오늘날 미국 사회에서 흑인들이 어려움을 겪는 것은 개인적인 책임이라고 주장합니다. 미국인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풀타임 직장을 갖고, 21세 이후에 결혼하고서 아이를 낳으면 빈곤층으로 전락할 가능성은 2%로 떨어지는데, 많은 흑인들이 이 기본적인 조건 3가지를 맞추지 못하기 때문에 빈곤층이 된다는 식의 설명입니다

뿌리깊은 인종 차별의 흔적이 여전히 남아있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미국의 흑인들이 겪고 있는 문제는 단순히 인종차별주의로 설명할 수 없습니다. 미국은 이제 인종차별주의를 없애기 위해 노력하기 보다는, 흑인들이 더 큰 타격을 입는 제도들을 개선해나가야 합니다. 가난한 지역의 공교육이 붕괴하지 않도록 교육 제도를 개선하고, 단순한 마약 사범들을 무조건 감옥에 가두는 사법 제도를 개선해야 합니다. 오늘날 미국에서 피부색은 예전같은 장벽이 아니지만, 킹 목사가 말한 “행복 추구”의 길은 끝이 없습니다.

미국인 무의식 속엔 인종차별적 편견 여전

지난해 여름, 미국 뉴욕시 주민들은 그 해 11월 치러질 시장선거 TV광고를 보고 깜짝 놀랐다. 더부룩한 곱슬머리로 누가 봐도 흑인에 가까운 소년이 민주당 백인 시장 후보 빌 더 블라지오 광고에 나와 “훌륭한 우리 아빠를 시장으로 뽑아달라”고 호소했기 때문이다.

이 소년은 더 블라지오 시장의 실제 아들인 단테 블라지오(17)였다. 단테는 더 블라지오 시장이 동성애 경력까지 있는 일곱 살 연상 흑인 여성 셜레인(60)과 결혼한 뒤 낳은 1남1녀 중 둘째였다. 확연히 다른 외모의 아들이 선거 광고에서 백인 아버지에 대한 사랑과 지지를 호소한 데 힘입어, 당초 민주당 내에서도 존재감 없던 더 블라지오는 24년만에 민주당 소속 뉴욕시장이 될 수 있었다.

인종차별을 딛고 성공한 걸로 따지면 버락 오바마 대통령도 빠지지 않는다. 그를 무명 정치인에서 대통령 후보감으로 부각시킨 계기는 2004년 민주당 전당대회였다. 당시 기조연설에서 오바마 대통령은 미국을 흑백을 구분하지 않는 나라로 지칭하며, “(아버지는 케냐 흑인 유학생ㆍ어머니는 백인인) 내 유산의 다양성에 감사 드린다. 양친의 꿈이 소중한 나의 두 딸 안에도 존재하고 있다. 나는 내 사례가 더 큰 미국 이야기의 한 부분이라는 걸 알고 있다. 지구상 어떤 나라도 내 이야기가 가능하지 않기 때문에 미국은 위대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가정에서의 인종문제를 발전적으로 승화시킨 이들도 그가 맡은 국가와 지역의 인종문제 해결에는 역부족인 상황이다. 오바마 당선 이후에도 미국의 인종 갈등은 여전하고, 더 블라지오의 뉴욕 시내에서도 흑인들의 인종차별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미국이 ‘인권의 사각지대’라고 압박하던 러시아, 중국, 북한마저 미국 전역에서 인종차별 시위가 확대되자, 기다렸다는 듯이 ‘너나 잘 해’라는 식의 비난성명을 내놓고 있다. 러시아 외무부의 콘스탄틴 돌고프 인권특사는 “미주리 주 퍼거슨 시와 다른 도시에서 벌어지고 있는 소요사태가 미국 안정에 대한 심각한 도전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또 “미국은 자국의 인권침해를 심각하게 다루길 바라며, 다른 나라에 공격적으로 가르치는 것을 그만두길 바란다”고 지적했다.

화춘잉 중국 외무부 대변인도 “인권에 관한 한 완전한 국가는 없다”며 우회적으로 미국을 비판했고, 북한 외무성 대변인도 “미국이야말로 인종 때문에 차별과 멸시를 당하고 주민들이 언제 총에 맞아 죽을지 몰라 공포에 떨어야 하는 암담한 인권유린국가”라고 비난했다.

그렇다면 2014년 현재 미국의 인종문제는 어떤 상황일까. 1960년대 마르틴 루터 킹 목사가 주도한 민권운동으로 흑인과 유색인종을 대놓고 핍박하는 법적ㆍ제도적 차별은 사라졌으나, 사회 전반의 관행과 주류 백인 시민들의 의식 저변에는 유색인종에 대한 편견을 전제로 한 차별이 상존한다. CNN과 뉴욕타임스 등도 ‘인종차별주의자가 사라진 인종차별’(Racism without racist) 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며, 퍼거슨과 뉴욕 클리블랜드에서 잇따른 사태의 원인을 미국인의 무의식 속에 각인된 인종차별적 편견에서 찾고 있다.

미국 미주리주 퍼거슨시, 뉴욕시 등에서의 백인경관에 의한 흑인 치사사건 및 관련 대배심 불기소 결정에 항의하는 시위가 확산된 가운데 6일(현지시간) 서부 시애틀의 항의 집회에서 한 참가자가 ‘흑인 목숨도 중요하다’는 문구의 머리띠를 두르고 있다. 연합뉴스

실제로 오바마 대통령 집권 이후에도 미국 사회에서는 흑인은 인종차별로 여기지만, 백인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억울한 강력사건이 빈발하고 있다. 퍼거슨, 뉴욕, 클리블랜드에서의 억울한 흑인 용의자의 죽음 이외에도 지난해에는 자동차 사고로 도움을 요청하던 흑인 소녀가 백인 집 문을 두드렸다가 총에 맞아 현장에서 숨졌다. 2012년에도 플로리다 주에서 17세 흑인 소년 트레이번 마틴이 비무장 상태인데도, 백인 방범대원과 시비로 다투다 피격돼 숨졌다.

범죄 통계도 미국 사법제도가 백인 대비 흑인ㆍ유색인종에게 가혹하게 집행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미국시민자유연합(ALCU)에 따르면 2007~2010년 보스턴 경찰이 불심검문한 사람들을 조사했더니, 전체 인구의 24%밖에 되지 않는 흑인 비율이 63%에 달했다. 반면 인구의 54%를 차지하는 백인 비율은 21%에 머물렀다. 인구 대비 흑인(3%) 재소자 비율도 백인(0.5%)보다 6배나 높고, 감형 없는 무기징역을 살고 있는 비율도 흑인(100만명당 50명)이 백인(100만명당 5명)보다 10배나 높다.

인종차별은 일상의 아주 사소한 데에도 만연하다. ‘흑인 성인 남성이라면 한번쯤 쇼핑 몰에서 경비원에게 이유 없이 붙잡힌 적이 있다’는 오바마 대통령의 말처럼, 미국 TV 드라마 트레메에 출연한 유명 배우 랍 브라운은 백화점에서 신용카드를 사용하다가 절도범으로 몰려 곤욕을 치뤘다. 지난해 뉴욕 맨해튼 메이시 백화점에서 어머니에게 선물을 주려고 140만원 고급시계를 카드로 결제하려다가, 도난카드로 의심한 경비원 3명에게 체포돼 수갑이 채워진 채 보안구역으로 끌려갔다. 신분증을 제시했는데도 서너 시간 수모를 당한 뒤에야 풀려났다.

CNN이 보도한 인종차별 실험결과도 충격적이다. 시카고대 연구팀이 구직 광고를 낸 1,300개 기업에 이름만 다르고 나머지는 모두 같은 5,000개 이력서를 보냈더니, 백인이 사용하는 ‘브렌든’일 경우 구직 인터뷰 허용 건수가 ‘자말’이라는 흑인 이름보다 50%나 많았다. 이 실험을 주도한 도린 로우리 교수는 “미국의 인종문제는 제도가 아니라, 삶의 구석구석에 침투한 의식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인종갈등이 ▦흑백간 빈부격차 확대 ▦미국 사법부의 보수화 경향 ▦9.11테러 등 안보불안과 맞물려 심화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해결책 모색도 그만큼 어렵다는 분석도 나온다.

워싱턴포스트는 특히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이 2001년 취임 연설에서 ‘인종 프로파일링’ 철폐를 약속했던 걸 상기시키며, 이 작업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보여준다고 보도했다. 인종 프로파일링이란 특정 인종이나 종교의 범법 가능성을 높게 간주하고 별도 징후가 없더라도 다른 집단 대비 감시 수준이나 대응을 강화하는 미 사법당국의 관행이다.

부시 행정부는 폐지 법안을 마련했으나, 9.11테러로 이슬람 집단에 대한 미국 내 경계심이 높아지면서 흐지부지 됐다. 워싱턴포스트는 “오바마 행정부도 경찰폭력 대책으로 이 제도 폐지를 공언했으나, 공항이나 접경 지역 출입국 관리 등 광범위한 예외를 인정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공화당 집권 시절 진입한 대법관이 다수인 미 대법원의 보수성향도 인종갈등 문제 해결의 걸림돌로 지목된다. 워싱턴포스트는 “올해 4월 대법원이 ‘소수계 우대조치’ 폐지에 합헌 결정을 내렸다”며 “이는 인종차별을 시정하려는 조치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히스패닉과 기타 유색인종의 인구 증가로 입지가 좁아지면서, 백인 주류사회가 소수계에 대한 우대조치를 그들에 대한 ‘역차별’로 여기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흑인들의 반발이 워낙 거세, 침묵을 지키지만 상당수 백인은 퍼거슨 사태를 인종차별이 아닌 ‘법 집행’문제로 여기고 있다. 또 미국 사회 흑백차별에 대한 여론 조사에서 흑인은 95%가 ‘심하다’고 응답한 반면, 백인은 16%만이 그렇다고 답했다. 흑인들의 차별 철폐요구가 이번에도 주류 백인사회의 몇몇 생색내기용 대책으로 사그라질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