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인종 차별 정책’을 먹고 사는 나라

미국에는 ‘바나나 공화국(banana republic)’이라는 말이 있다. 미국식 교육을 받고, 철저하게 미국의 사고방식을 가지며, 미국의 뜻에 잘 따르는 정치인들이 지배하는 정부를 가리키는 말이다. 이 말은 원래 친미를 넘어 숭미에 가까운 정치인들이 지배하는 나라를 일컫는 말이었는데, 요즘에 와서는 그 의미와 대상이 확장된 것 같다.

바나나는 껍질은 노란색이지만 껍질을 벗겨내면 속은 흰색이다. 미국, 특히 백인들이 말하는 바나나 공화국이란 ‘동양인, 황인종이면서도 철저하게 미국식의 사고와 행동을 따라가려는 사람들’을 말하는 것이다. 이 말에는 미국에 대한 맹목적이고 무조건적인 애정과 믿음을 보이는 동양 사람들에 대한 비웃음의 의미가 들어 있다. 동시에 서양인과 동양인은 다르다는 백인들의 인종 차별 의식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현재의 우리의 모습은 어떠한가? 미국의 백인들이 바라보기에 우리나라는 전형적인 바나나 공화국 시민들이 아닐까. 많은 학생들과 직장인들이 영어를 ‘세계 공용어’라 여기고 목을 매고 있는 나라, 어학연수는 필수이고 조기 유학은 아이를 위한 최선의 투자라고 생각하는 나라, 원정출산까지 당당하게 감행하는 나라, 발음을 위해서라면 아이에게 혀 수술까지 시키는 나라, 무엇보다도 한 국가의 중심인 수도라는 곳에서 영어를 쓰지 못해 안달이 나서 눈에 보이는 곳곳마다 영어를 표기하려 애쓰는 나라. 이것의 우리의 현주소가 아닐까.

얼핏 보기에 미국은 분명 자유와 평등의 땅, 기회의 땅이다. 자본주의의 중심이자 민주주의 상징인 미국은 열심히 일하기만 하면 누구나 성공할 수 있는 나라로 여겨져 왔다. 그러나 기회와 부라는 신화 뒤에 추악한 인종 차별 정책이 있어 왔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은 것 같다. 기회와 부는 언제나 백인의 몫이었고 피부 색깔이 다른 사람의 몫은 아니었다.

흔히 미국을 이야기할 때 엘리스 섬에 있는 ‘자유의 여신상’을 빼놓지 않는다. 수많은 사람들이 ‘자유의 여신상’을 보면서 감격스럽게 자유와 평등과 정의를 이야기한다. 원래 엘리스 섬은 유럽계 백인들이 도착하여 간단한 입국수속을 밟고 뉴욕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관문이었다.

유럽 사람들에게 미국은 기회와 황금의 땅이었고, 미국의 수정헌법이 명시하듯 만인이 ‘평등’한 땅이었다. 엘리스 섬은 유럽 사람들에게 있어서만큼은 ‘자유’의 상징이었다. 그렇지만 그 이면에는 억압과 수탈, 노예로서의 삶을 상징하는 ‘에인절 섬’과 ‘설리번 섬’이 존재하고 있었다.

대부분의 미국인은 물론 한국인과 세계인들은 에인절 섬과 설리번 섬에 대해 전혀 들어본 적이 없을 것이다. 에인절 섬에는 아시아인 이민자들이 거쳐야 하는 검문소가 설치돼 있었다. 1910년 문을 연 에인절 섬 검문소는 아시아인 이민을 억제하기 위한 일종의 이민자 수용소였다. 중국계 이민자들은 에인절 섬에 내린 후, 합법적으로 미국에 왔다는 것이 증명될 때까지 최소 3일에서 최고 3년까지 이곳에 갇혀 있어야 했다.

한편 흑인 노예들은 설리번 섬에 노예로 팔려 왔다. 동물처럼 쇠사슬에 묶인 채 노예선에 실려 온 흑인 노예들은 굶어죽거나 학대에 못 이겨 죽어갔고, 병들면 헌신짝처럼 바다에 버려졌다. 혹독한 노예선의 여정에서 겨우 살아남은 흑인들이 도착한 곳이 바로 설리번 섬이었다. 자유인이 아닌 노예로서 말이다. 에인절 섬과 설리번 섬은 수탈과 압박 그리고 노예로서의 새로운 삶이 시작되는 또 다른 미국의 관문이었던 셈이다.

‘만인은 평등하게 태어났다’고 명시한 수정헌법은 유럽에서 이주한 백인 이민자들에게만 의미가 있는 법이었다. 이 법은 ‘백인 이민자들만이 계급과 신분에 상관없이 법의 보호를 받는다’는 것만을 의미했다. 백인들이 보기에 유색 인종은 미국의 시민이 될 수 없는 전혀 다른 인종 혹은 이등국민일 뿐이었다. 이처럼 미국의 인종 차별 정책은 유래가 깊다.

원래 동양인이나 흑인들은 값싼 노동력을 위해 미국이 데리고 온 사람들이었다. 또한 백인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통해 그들의 임금을 올리고 권익을 신장시키자, 그것을 와해시키기 위해 동양인이나 흑인들을 노동자로서 고용한 것이었다. 자본가들은 같은 노동자이면서도 백인, 흑인, 황인의 피부색깔을 내세우며 백인을 일하는 자유인으로 강조하고 황인과 흑인보다 우월한 인간이라는 환상을 심어주어 노동조합을 와해시켰다.

값싼 노동력을 위해 데리고 온 중국인의 수가 너무 많아져서 백인들과 일자리를 위한 경쟁 상대가 되자 ‘중국인 이민 금지법’을 제정한 예에서 볼 수 있듯이 미국은 백인의 이익을 위해 소수 민족을 차별하는 백인 특권 사회인 것이다. 이처럼 처음에는 값싼 노동력을 위해 이민 정책을 장려하다가 어느 순간 백인들의 권익 보호를 위해 이민을 억제하는 예는 일본이나 필리핀 사람들의 이민 모습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자국의 경제 사정에 따라 이민을 장려하거나 억제하면서 소수 민족을 그들의 희생물로 삼아온 것이다.

동양 사람들은 백인들의 세계를 발전시키기 위한 수단이었지 동등한 권리를 가진 인간은 아니었다. 서양이 동양을 표현할 때 흔히 말하는 ‘오리엔탈’이라고 말한다. 이 표현은 서양이 동양을 차별과 수탈의 대상으로 여기고 이등시민으로 업신여기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또한 오리엔탈이라는 표현은 ‘오리엔탈 음식’, ‘오리엔탈 옷’처럼 사람보다는 사물을 지칭할 때 많이 쓰이는 표현이다. 결국 서양이 보는 동양, 백인이 보는 아시아인은 ‘사람’들이 아니라 ‘물건’에 지나지 않은 것이었다.

최근 들어 미국에 살고 있는 중국, 한국, 필리핀, 인도 등의 아시아계 사람들이 모여 차별의 의미를 갖고 있는 ‘오리엔탈’이라는 단어를 거부하고 ‘아시안 아메리칸’이라는 새로운 말을 쓰기 시작했다. 이는 미국 내 아시아계 소수 민족들이 더 이상 이방인이기를 거부하고 또 다른 미국의 구성원임을 강조하는 뜻 깊은 일이다.

뿌리 깊은 미국의 인종 차별 정책은 국내외 많은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지금의 중동 문제가 백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이스라엘에 대한 전폭적인 지지에서 비롯된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라크에서 벌어진 미군의 포로들에 대한 학대와 인권 모독은 미국이 이라크의 민주주의를 위해 들어간 것이 아니라 침략했다는 사실을 백일하에 드러냈다. LA 흑인 폭동과 한흑 갈등, 소수 민족 간의 갈등 역시 백인 특권 의식과 인종 차별 정책의 그 주요한 원인이다.

콜럼버스가 발을 디딘 미국은 원래 인디언의 땅이었다. 백인들이 보기에 미국은 새로 발견한 땅이지만, 원주민들인 인디언들의 처지에서는 그들은 침략자일 뿐이다. 그러나 미국은 이러한 침략의 역사를 자본주의의 발달사라는 그럴듯한 포장으로 가려 놓고 있다. 소수 민족에 대한 시각도 이와 비슷하다. 미국을 위한 소수 민족의 희생과 업적을 숨긴 채, 백인들의 우월성, 우수성만을 강조하고 있다.

미국은 다민족, 다인종으로 이루어진 국가지만 ‘백인만의 국가’를 만들려는 백인 지도자들은 이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침략과 폭압의 역사는 감추고 백인들만을 미화시킨 미국, 그러나 대부분의 미국 유학생은 이러한 미화된 백인의 역사만을 배우고 와서 퍼뜨리고 있다. 결국 우리는 온전하게 미국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 백인의 입장에서 미국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아시안 아메리칸>(책세상)은 인종 문제를 중심으로 미국의 숨겨진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과연 미국이 아름다운 나라인가, 아니면 추악한 나라인가의 판단은 미국을 좀더 확실히 알아보고 난 후에 평가하라고 말하고 있다. 자유와 평등, 억압과 수탈이라는 두 얼굴의 나라 미국, 지금껏 우리는 한 면만을 봐왔다고 말하는 이 책은 그 양에 비해 묵직하다.